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루이나 헌정 위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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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 여담 == * 3.29 헌정위기는 현직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해 3선을 선언하고, 이에 반대한 의회가 물리적 공격을 받은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. 이후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은 개정 자체가 금지되는 영구조항이 되었다. * 사건 직후 벨포르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의사당 주변을 청소하고 파괴된 바리케이드를 임시 보수했다. 이 시민참여형 회복 캠페인은 '''벨포르의 의지(Belfort Will)'''로 알려져 루이나 시민사회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. * 테러에 사용된 차량은 트라팔가사의 SUV였으며, 이로 인해 트라팔가는 극우 단체와의 유착 의혹에 휘말렸다. 내부 고발자가 일부 중역의 정치 후원을 증언하면서 임원 3명이 해임되고 회사는 대대적인 윤리감사를 실시했다. * 본회의장에 입장한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정장을 벗고 방탄복 위에 당 패용만 착용한 채 등장했다. 이 장면은 "민주주의는 말보다 먼저 생존해야 한다"는 문장과 함께 루이나 정치의 상징 중 하나로 남았다. * 탄핵 직후 루이나에서는 '#NoMoreKing', '#329NeverForget' 등의 구호가 널리 확산되었고, 매년 3월 29일에는 의사당 정문 앞에서 헌정 수호 추모식이 열린다. * 사건 당시 본회의장에 있던 속기사는 상황을 끝까지 기록했다. 해당 속기록은 국립기록원에 보존되어 일부가 공개되었으며, "의장이 방탄복을 입은 채 의사봉을 두드리며 의결을 강행하는 장면"이 포함되어 있어 뒷날 영화화되기도 했다. * 재판부가 판결문 제6항에서 남긴 "헌법이 어떻게 죽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그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였다"는 구절은 현재 루이나 사법연수원 대강당 벽면에 새겨져 있다. * 마커스 엘트리치와 함께 검거된 극우 인사 중 일부는 자살, 망명, 신원 은폐를 시도했으나 광역수사국의 광역 수사와 국제 공조로 대부분 체포되었으며, 최종적으로 '''238명'''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. 이 중 내란죄와 살인죄로 기소된 17명은 무기징역 이상을 선고받았다. * 베인브리지의 유언 "내 조국은 무릎 꿇지 않았다"는 이후 극우 잔존세력의 선동 문구로 사용되어 불법화되었다. * 3월 29일 오후 국방참모총장이 계엄 명령을 거부하며 참모본부에 남긴 "이 명령은 헌법에 근거가 없다"는 한 줄의 회신은, 1978년 [[10.10 군사반란]] 당시 [[리처드 잭슨]] 대통령의 명령이 아무에게도 이행되지 않았던 장면과 대비되어 자주 인용된다. 사회학자 클로에 마이어스는 이를 두고 "루이나 군은 11년 만에 같은 방식으로, 그러나 정반대 방향으로 대통령을 배신했다"고 평가했다. * 사건 이후 벨포르 시청 외벽에 새겨진 문구는 현재 리버티 광장의 조형물에도 새겨져 있다. > "우리는 총이 아니라 투표로 나라를 지킨다. 그리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헌법을 수호한다."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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